요한복음서 19장에서 빌라도가 예수님을 풀어줄려 노력하였지만
유다인들에 압박에 밀려 어쩔수없이 유다인의 뜻에 굴복한것인데
과연 빌라도가 잘못 한것일까요?
그렇다면 저희가 빌라도라면 유다인들의 뜻을 떨쳐내고 예수님을 풀어주는 판결을 내려주는 선택을할수 있을까요?
사람각자가 손에 쥐고있는 소소한 행복을 내려놓고 신앙을 잡을수있을까요?
요한복음서 19장에서 빌라도가 예수님을 풀어줄려 노력하였지만
유다인들에 압박에 밀려 어쩔수없이 유다인의 뜻에 굴복한것인데
과연 빌라도가 잘못 한것일까요?
그렇다면 저희가 빌라도라면 유다인들의 뜻을 떨쳐내고 예수님을 풀어주는 판결을 내려주는 선택을할수 있을까요?
사람각자가 손에 쥐고있는 소소한 행복을 내려놓고 신앙을 잡을수있을까요?
초등 5학년 클라스에 고민하며 던진 질문이 이 정도라면, 레오는 성소의 DNA 를 갖추고 있는지... 잘 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어린이 눈에는 사형 선고를 내린 빌라도가 야속할 수 있겠으나, 거기에 우리 자신을 대입시켜 보는 그 생각의 폭은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 놀랍네요. 귀엽고 사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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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 형제님.... 다양한 내용의 소견으로 대화 나눔을 주신 ‘요한복음 19장’ 말씀은,
아마도 많은 교우분들도 함께 생각하며 묵상 해 볼 수 있는 말씀이라 생각을 해봅니다.
제 생각은, 빌라도의 판결 잘못 여부와, 그 빌라도가 ‘우리 라면?’이 대입된 예측은 무 의미한 것은 아닐까 생각도 듭니다.
빌라도와 우리는 어떤 당시, 어떤 상황에서이든 늘 최선을 선택 했을 것이고, 그것도 않되면 차선을 선택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부분 어쩔 수 없는 그 상황 대부분이 하느님의 섭리와 뜻 안에 계셨음을 우리는 신앙하기 때문입니다. (유다의 배신과, 예수님의 죽음조차도......)
지금, 우리의 선택이 후회되는 일 있어, 과거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갈 수 있다 해도,
그 당시에 최선이었던 그 선택을 우리는 똑 같이, 다시 선택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 보는 겁니다.
결국,
‘빌라도와 우리가 예수님께 사형을 선고 했을 지라도 잘 못을 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손에 쥐고있는 소소한 생활의 행복과, 신앙은 두 개체로 분리된 양자 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그 ‘소소한 생활의 행복은 신앙을 통해 더욱 깊어지고 심화되어 기어이 완성에 이르는 완전히 일치된 하나의 개체이다’
라는 생각을 합니다.
저의 사견입니다.
더 깊은 신앙적 대화는 수녀님이나 신부님과 언제든 어떤 내용이든 나누실 수있습니다. (비밀글은 신부님만, 볼 수 있습니다.)